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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1] 지혜롭지만 어리석은 질문

[18.04.01] 지혜롭지만 어리석은 질문 / 고전 15:35-49/ 송영의 목사 초대 고린도 교회에서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부활을 강력히 반대를 제기함 .  바울사도는 36 절에서 어리석은 자여 라고 말하는 이유는 ? 고린도 교인 질문 2 가지에 대한 답으로 반박한 내용을 볼 필요가 있음 . 고린도 교회의 질문 2 가지 죽은자들이 어떻게 사는가 ? 썩은 몸의 재구성이 불가능하다고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반대함 . 사도바울은 두가지 이유로 반박함 . 1) 죽기 때문에 다시산다 . 씨가 썩어야 발아하듯   2)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다 . - 하나님의 뜻대로하면 일어난다 .  죽은사람이 어떤 몸으로 다시사는가 ? 부활의 내용은 ? 부활전의 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 콩이 콩나물이 아닌 것이 아닌것 처럼 부활전의 몸이 부활후의 몸이 아님 서로 다름 . 바울의 비유 1) 식물에 빗대어 - 씨앗과 나무는 연속성이 있으나 2) 동물에 빗대어 설명 - 인간이 다칠때 짐승의 피를 수혈할 수 없듯이 서로 고유한 몸이 있다 3) 무생물에 빗대어 설명 -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은 서로 다름 . 천국에 맞는 몸과 이땅의 몸이 서로 다름 .  부활한 몸의 특징을 설명함 - 장차올 세상의 몸이지 이 세상의 몸이 아닌 것임 .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몸 - 승천전 40 일간은 제자들과 식사도 하시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혹은 보이지 않은 형태로 계심 .  - 재림때에 우리의 몸도 그렇게 만들어주심 . ~ 잠자는 자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 첫열매는 부활의 표임 . 우리가 부활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의 ...

[18.03.25] 사랑과 진실

[18.03.25] 사랑과 진실 / 엡 6:21-22/ 송영의 목사 영어식 이름 중에 투키쿠 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투키쿠는 두기고 (Tychicus) 의 영어식 명칭 . 두기고는 귀한 사역을 하였으나 관심을 받지 못함 . 하지만 두기고와 같은 신앙인이 되고자 해야 함 . 에베소 사람 두기고는 고향에서 환영 , 존경받지 못한 관례를 깨고 에베소교회에 인사를 전함 . 두기고는 다음과 같이 사랑과 진실의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음 .  사랑을 받는 형제 주안에서 진실한 형제 . 양심을 기준하지 않고 주안에서 진실한 사람 사랑과 진실을 인정받은 두기고는 에베소 교회로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됨 . 이로써 에베소교인들을 위로함 .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위로 한 것임 . 에베소교회는 편지머리말에 인사가 없음 . 이는 인사할 사람이 많아 일일이 하기가 어려워서 두기고를 통하여 인사를 부탁하였던 것임 두기고는 바울의 신뢰를 받았던 사람임을 방증함 . 

[18.03.18] 신자의 복

[18.03.18] 신자의 복 / 눅 1:39-45 / 송영의 목사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증거로 늙어 수태한 엘리사벳을 방문함 . 북부에서 160km 를 이동하여 남부로 가는 여정임 . 유대에 가는 무리에 혼자 묻혀 이동하여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함 .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첫마디가 복이 있다 라고 함 .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임 . 구원의 기쁨에 감격하며 그 복을 누리는 것 . 세가지 복을 보여줌 1.영적인 열심의 복 .( 눅 1:39-40)  -천사에 엘리사벳 수태소식을 듣고 즉각적으로 행동함 “ 빨리 감 ”( 눅 1:39).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은 말씀에 대한 피상적인 수용성이 있어 말씀에 그려려니 , 당연하지 하고 반응 , 실천하지 않으나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반응함 . 하나임의 말씀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현장에 가고싶어하는 갈급함이 있음 .  - 우리에게도 마리아 같은 열심이 있어야 함 . 말씀에 반응하고 헌신할때 기적의 현장에 있기 마련 2. 영적인 민감성의 복 ( 눅 1:41-44)  복중의 6 개월된 아기 세례요한이 마리아 뱃속의 예수님을 알아보고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어놈 .  어머니 뱃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영적인 민감성을 가짐 . 임신사실을 말 안한 마리아의 임신을 알아본 엘리사벳은 칭찬하고 기뻐하며 축복함 . 서로 알아보는 사건 - 영적인 이심전심 . 성령으로 하나된 사람은 영적인 이심전심 . 성령의 사람은 아군을 아군으로 알아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군을 공격하며 하나님 섬기는 예로 오해하기 마련임 .  취향 , 성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 , 목숨값으로 사신 성도임을 알고 그를 친구로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