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18] 신자의 복

[18.03.18] 신자의 / 1:39-45 / 송영의 목사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증거로 늙어 수태한 엘리사벳을 방문함. 북부에서 160km 이동하여 남부로 가는 여정임. 유대에 가는 무리에 혼자 묻혀 이동하여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함.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첫마디가 복이 있다 라고 .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임. 구원의 기쁨에 감격하며 복을 누리는 . 세가지 복을 보여줌

1.영적인 열심의 .(1:39-40) 
-천사에 엘리사벳 수태소식을 듣고 즉각적으로 행동함빨리 ”(1:39).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은 말씀에 대한 피상적인 수용성이 있어 말씀에 그려려니, 당연하지 하고 반응,실천하지 않으나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반응함. 하나임의 말씀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현장에 가고싶어하는 갈급함이 있음
-우리에게도 마리아 같은 열심이 있어야 . 말씀에 반응하고 헌신할때 기적의 현장에 있기 마련

2.영적인 민감성의 (1:41-44) 
복중의 6개월된 아기 세례요한이 마리아 뱃속의 예수님을 알아보고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어놈
어머니 뱃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영적인 민감성을 가짐. 임신사실을 안한 마리아의 임신을 알아본 엘리사벳은 칭찬하고 기뻐하며 축복함. 서로 알아보는 사건
-영적인 이심전심. 성령으로 하나된 사람은 영적인 이심전심. 성령의 사람은 아군을 아군으로 알아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군을 공격하며 하나님 섬기는 예로 오해하기 마련임

취향, 성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 목숨값으로 사신 성도임을 알고 그를 친구로 생각하고 목숨까지도 버릴 있음. 성도간의 교제가 영적인 이심전심. 세상이 가질수도 없는 평안을 세상이 부러워 하게 . 세상의 가진 것을 부러워 하지 않고 은혜를 부러워 하는 대화를 하는 사이가

이러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 영적인 감수성이 뛰어나야 . “성령충만해야 .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성도의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가능함.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영적인 이심전심) 가능하다고 신앙고백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한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릴 있음

3.영적 확신의 (1:45)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 어떻게 가질수 있을까(1:43)마리아의 방문을 감당할 없다는 겸손의 고백.
주의 어머니 내게 나아오니 어찌된 일인가 라고 엘리사벳의 고백함. 엘리사벳의 신앙고백-예수님의 주권인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줌

니체가 교회에 들어가서 교인을 보며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함. -교만하고 교인을 무시하고 거룩한 예배드리는 교인을 그냥 두는 보면 신은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 이라고 말함
그때 필요한 고백은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임

엘리사벳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 욥의 고난이 길어지자 의로운 욥도 원망과 불평했다. 예례미아 선지자는 우상숭배의 죄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을 막기위해 기도 했으나 예루살렘은 오히려 예례미아를 죽이려 들자 예례미아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께 백성을 심판할 것을 기도함.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될때 우리는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하나? 욥과 예례미아의 회개와 하나님의 주권을 일임하였음. 엘리사벳의 고백, 신앙의 복이 우리에게도 필요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구원받아야 되는 존재이지만 엄청난 세가지 복을 누림. 우리도 이런 복을 사모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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