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09] 은혜의 피뢰침
[17.07.09] 은혜의 피뢰침/ 막 2:1-12/ 송영의 목사
슈바이쳐는 30세 이후에는 인류봉사에 헌신코자 결의 함. 의사공부 8년 뒤 38세에 아프리카에서 평생토록 헌신함. 바울사도의 자세와 유사. 우리가 빚진 은혜의 빚을 어떻게 갚을까?
중풍병환자와 이웃의 이야기
- 중풍병자는 젊은 사람
막 2:5 ' 작은자야(소자야/아들아)' 예수님께서 평소에 사용치 않는 단어로 쓰임. 헬라어에서는 '아이, 아들, 후손 으로 번역되는 말을 씀. ' 얘야' 라고 부를 수 있는 단어를 쓰심. 중풍병은 일반적으로 성인들이 걸리는데 31세의 예수님이 5-60대 중풍병환자에게 '얘야' 라고 부른 건 어색함. 따라서 중풍병환자는 10대일 가능성도 있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환자에게 '죄의식'을 강조하심. 마음의 병으로 인해 신체의 병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질병으로 드러누은 것임. 병을 고치는게 문제가 아니라 질병의 뿌리를 다스리기 위해 죄사함을 먼저 선포하심. 증상해결이 아니라 근본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일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음.
cf.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도 문제의 근원을 분명히 해결하심 (요 8:11) 예수님께서는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 고 하심.
-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사람(이상)은 친구가 아님.
- 선입관 때문에 성경을 잘 못 볼 수 있는 예.
- 슈바이쳐를 보는 것도 선입관을 버리고 볼 필요가 있음. 슈바이쳐는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여 독일 교계에서도 선교사 파송을 거부하자' 프랑스 선교단체에 의사로서 파송되며 신학적으로 주장하지 않기로' 각서를 씀. 스위스의 자유주의 선교단체에서 제안을 하나 슈바이쳐가 거부함. 결국 프랑스 선교단체의 파송을 받음. - 신학적으로는 문제있으나 인격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었음. (선입관의 폐해)
베드로 집에 사람이 가득차서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못들어 가서 옆집 지붕으로 올라가 베드로집 지붕으로 침상 채로 넘어감. 지붕이 편평하여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하며 집과 집끼리는 붙어 있어서 이동이 편함. '지붕위의 길' 이라고 부르기도 함.
침상 채로 내리기 위해 지붕을 뜯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도 사하고 병도 고쳐주심. 이들은 '은혜의 피뢰침' 이었음. (빽투더 퓨쳐에서 박사가 전기를 모을때 썼던 피뢰침 처럼 그들은 ' 은혜의 통로'가 됨)
병자를 데리고 온 이웃의 '믿음의 특징'
- 믿음도 컸지만 사랑도 컸음
- 불굴의 자세을 가진 믿음
- 시대를 뛰어넘는 믿음
- 행함이 있는 믿음
- 희생과 헌심의 믿음
이러한 믿음으로 은혜의 통로가 됨.
은혜의 피뢰침이 되길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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